나는 영일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많은 일들을 새롭게 경험했다. 밝은 대낮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의 나는 저녁이 되고 나서야 캄캄한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나의 친구들과 함께 이 영일고등학교를 걸어 나온다. 이렇게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는데, 그 기간 동안 고등학생으로 살면서 때로 너무 피곤한 시험기간에는 저녁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바로 잠든 후 그대로 등교를 한 적도 있었고 학교에서 직접 가는 첫 봉사활동에 괜히 마음이 설레었던 적도 있다. 특히 영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 학교만의 특색 있는 활동이나 행사들에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 공모전의 주제를 읽고 체육대회나 첫 봉사활동, 우리 동아리인 온새미로가 주최하는 행사와 같은 정말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추억을 골라보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그중에서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하루가 떠올랐다. 그날은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느 때보다 평범했기 때문에 더더욱 내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맨날 반복되는 지겨운 하루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이 하루가 영일고등학교 김연서여야지만 겪을 수 있는 소중한 하루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고 떠들던 하루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날은 아침에 등교를 한 뒤 나처럼 늦잠을 잔 소윤이랑 화장실에서 만나서 옆에 서서 양치를 했다. 소윤이는 항상 아침마다 양치를 하고 있는데 너무 나무늘보 같고 귀엽다. 양치를 하고 나서는 급하게 청소를 하러 도서관에 내려가서 청소를 하고 다시 반으로 올라왔다. 아침시간이 끝난 후에 폰 도우미인 내가 폰을 걷어서 교무실에 내러 가야 하는데 채영이가 또또 폰을 안 내고 버텨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선생님한테 일러주었다. 선생님이 채영이 녀석을 데려오라 하셔서 데리고 갔다. 몇 분 뒤에 채영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폰을 내고 왔다. 말은 이렇게 해도 채영이는 늘 책임감 넘치는 모습으로 묵묵히 이것저것 해낸다. 그래서 항상 믿음직스러운 채영이가 너무 든든하다. 그렇게 이 말 안 듣는 녀석들의 폰을 다 걷어주고 나서 1교시가 시작해 수업을 들었다. 계속 수업을 듣다가 책을 안 가져온 과목이 있어서 은제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가서 앉은 후에 은제 옆에 딱 붙어서 수업을 들었다. 조금 졸면 은제가 깨워주고 허리도 피고 앉으라고 말해줘서 은제가 참 엄마 같고 좋았다. 그리고 은제는 너무 천사 같다. (본인 피셜입니다.)
4교시까지 마치고 급식을 먹으러 갔다. 급식에 나온 초콜릿쿠키가 너무 맛있어서 현서랑 지수 것도 조금씩 뺏어먹고 나와서 산책을 조금 하다가 반에 들어갔다. 5교시는 음악이었는데 드디어 음악실에 와이파이가 설치된다고 해서 애들이 엄청 좋아했다. 사실 음악시간에 와이파이가 필요하진 않지만 자습할 때 이 녀석들이 패드로 무슨 재미난 걸 하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다. 음악도 끝내고 나서 6, 7교시도 마친 후에 내가 가장 재밌게 한 끄적끄적 방과 후를 하려고 반에 들어가 앉았다. 이채원 쌤 짱짱 최고… 글 열심히 끄적끄적하시는 게 진짜 방과후학교 수업 이름을 야무지게 지으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 쓰는 걸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서 특히 이 ‘끄적끄적’이 나에게 최적화된 방과후수업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끝난 게 너무너무 아쉽기도 하다.
방과 후도 모두 끝낸 후에 규연이랑 예영이랑 은제랑 다 같이 석식을 먹으러 갔다. 석식을 먹으면서 석식은 왜 항상 점심보다 맛있게 나오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석식을 먹으러 가는 길과 먹고 나오는 길에 체감상 날씨가 전보다 많이 풀린 것 같아서 너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규연이랑 경아랑 수현이랑 나오면서 ‘이제 진짜 겨울이 오겠구나’ 하면서 겨울에 대한 얘기랑 이런저런 말들을 하면서 설렌다는 말도 했는데 왜 아직도 그 공기와 온도가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겨울도 언젠간 추위와 함께 우리 곁에 불어오고 또 우리를 떠나가며 봄이 오고야 말겠지 하는 생각에 동시에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공허함도 느꼈던 것 같다.
야자 할 준비를 마치고 야자 시작종이 울린 후에 산뜻하게 20분 정도 낮잠을 때렸다. 솔직히 더 자고 싶었지만 나의 간접적 엄마인 은제가 와서 허리도 펴주고 엉덩이도 의자 등받이에 붙여줘서 공부를 시작했다. 근데 진짜 엎드려서 편안하게 강의를 듣는 것보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집중하니까 훨씬 정신이 들어서 은제한테 존경의 눈빛을 몇 초간 보냈다. 이 자세는 요즘도 꾸벅꾸벅 조는 나의 최후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과학 요점정리를 좀 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도 읽었더니 금방 9시가 돼서 친구들과 하교했다. 하교할 때 운동장에서 보는 선배들과 친구들이 지친 얼굴들이지만 그날 있었던 얘기들을 나누며 밝게 웃는 모습들은 피곤한 나에게도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해주는 위로가 되었다. 그날따라 달도 기분이 좋은지 엄청나게 밝게 떠서 애들이랑 구경하면서 하교했다. 혼자 걷는 길에 보는 달은 어두운 하늘에서 홀로 뜬 채 외로워 보이기만 하는데 좋은 사람들과 구경하는 달은 적당히 찬란하고 밝게 빛나서 까만 하늘 아래 우리가 무섭지 않게, 심심하지 않게 따라오면서 지켜주는 기분이 든다.
집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씻었더니 훌쩍 10시가 넘어버려서 이 날은 일찍 잠에 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었지만 너무 평범한 하루였음에도 그날 잠들 때의 내 기분은 너무 행복했다. 진짜 17살이 된 기분을 만끽한 하루였다. 이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영일고등학교 학생 17살 김연서로서의 하루다. 이 하루는 나와 반 친구들과 모든 선생님들, 학교 그리고 날씨와 공기가 만들어준 가장 편안한 하루이기도 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하루라는 이유로 별 거 아닌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고, 절대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하루라는 이유로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던 하루였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언제나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지금 우리의 순간들이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aside> 📎 차례(index)
독도등대관리원, 사진작가, 시인으로 살기 (김현길, 5회 졸업)
생각보다 나의 시간은 훨씬 길다 (김연지, 33회 졸업)
활발한 고등학생에서 작은 마을 연예인으로 (조혜지, 35회)
The Road Not Taken (Ms. Rufty)
승리를 위한 열띤 함성 (어울림한마당 응원단장 박성현・손승빈)
썰플리 ver. 편집부 (홍시언・황유정・김서원・조수민・박예솔・홍민기)
<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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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시적인 아침 (장서영・김다빈・윤규민・고은빛・박효민・한지수・신세연)
시골 쥐들의 도시 여행 (김은서・김지윤・손지원・조연희)
<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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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청소년 사회참여활동 및 정책제안 발표대회 (**이지현・한지수・장서영・권정은)
청소년 인문학읽기 전국대회 참여 후기 (홍해솔・신세연・전지현・전가은 + 이채원 선생님)
<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김초엽 작가와 함께한 《파견자들》 북토크 후기 (신세연・홍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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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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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동행 굿즈 판매 현장 탐방 (스튜디오 공간 × 에듀토토)
<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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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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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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