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OO(3학년)

<aside> 📌 제24회 재생백일장 고등부 장원 작품

(재)애린복지재단이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가 주관한 제24회 재생백일장에서 우리학교 3학년 이영은 학생이 고등부 산문 장원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에 수상작인 <아버지>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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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절묘하게도. 이제 막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이다. 잠이란 것은 거의 찾아보지 못했던 3일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백일장 주제를 내밀었다. 주제는 다 정했냐는 내 아버지의 말씀에 묘한 미시감을 느꼈다. 할, 아버지. 엄마의 아버지.

큰언니에게서 소식을 전해 듣고 한동안은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장 가까이 사는 것이 우리 가족이었고 실제로 남이 들으면 놀랄 정도의 거리였으므로 바로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그 앞에서 부모님과 할머니를 기다렸고 엄마와 할머니가 비틀대며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현관에 들어서기 무섭게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던 거실의 침대를 어루만지셨다. 은희 아빠, 나 왔어. 은희 아빠-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꼬박 20여 일을 병원에 계셨던 할아버지만을 잠시 두고 집에 들르신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가시겠지. 그리고 나와 엄마는 또 면회할 수 없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에 가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10분 만에 나오겠지

입관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울지 않았다. 셋째 이모는 상복을 입다가 울었다. 나 이거 입기 싫어어 하고 울던 이모의 머리에 작고 하얀 리본을 달아주며 엄마도 같이 울었다. 왜 나는 눈물이 안 나지, 바쁘게 조문객을 자리로 안내하고 상을 차리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말마따나 큰 손주들 중에는 내가 할아버지를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이 봤는데. 눈물은커녕 누나들 앞에서 선보이는 오 번 손주의 춤사위에 웃기까지 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결론이었다. 유족 분들, 아버지 얼굴 마지막으로 보시겠습니다, 하는 관계자의 말에 홀린 듯이 일어났다. 덤덤할 줄 알았는데 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일렬로 쭉 선 그 자리에서는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할머니 나 무서워, 그러는데 할머니는 아무것도 안 들리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머릿속에서 뭐가 삐이이 하고 울렸다. 엄마와 이모들의 울음소리가 먹혀들어갔고 그게 아직도 나는 할아버지라고 인지하기가 어려운, 그 수의를 입은 내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여전히 그 대목만 생각하면 호흡이 곤란해진다.

손주 분들도 인사 나누시겠습니다, 하는 말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천천히 끌어 할아버지 얼굴 앞에 닿았다. 아, 편안한 입가. 당장 삼 일 전 엄마의 휴대폰 사진첩에서 발견했던 가장 최근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도 안온한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묘하게 푸르스름한 그 얼굴에 손을 천천히 올렸다. 아, 아, 아. 이제껏 만져본 그 무엇보다도 차갑다. 더이상 육신으로는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내 할아버지. 세상사 그 어떤 업적도 더이상 그 생동감 넘치고 따끈한, 애정 넘치는 시선 앞에 내밀 수 없음을. 그제야 알았다.

할아버지 그 차고 고운 얼굴을 면포로 덮고 삼베로 싸는데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얇은 유리벽 하나만을 두고 입관을 지켜보았다. 쓰러질 것만 같은 엄마를 붙들고, 풀리는 다리에 어떻게든 힘을 주고. 그러다,

쾅-

남의 손이 관 뚜껑을 쳐대며 할아버지와 나를 영원히 영원히 갈라놓는데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세상 어떤 슬픔도 그에 비할 수 없음을 알았다. 나가지 않으려는 딸을 질질 끌고 나가는 아빠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는지 어쨌는지, 차마 엄마의 아빠 앞에 드릴 수 없었던 말을 내 아빠의 앞에 토해냈다.

잊을 수 있을까. 꿈엔들 잊을리야. 그 차고 마지막까지 보드랍던 얼굴을.

멍한 채로 또다시 상을 나르고 치웠다. 이야, 이렇게 컸어? 아이고, 고등학교 삼학년이라고? 어떡하냐, 한참 중요할 때에. 실제로 대학 수시 원서 접수를 두 장 남겨놓은 상태이기는 했으나 이미 그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감사한 말씀이었으나 이 삐딱하고 못된 마음이 자꾸 그를 원망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어디 중요한가요? 내 할아버지와 나의 시간을 모르는 소리를 어찌 그리 쉽게 하시나요?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목놓아 우는 나를 보고 또 다들 울었다. 한 줌의 흙이 된다니. 아무리 편찮고 야위셨다 해도 두 팔 가득 담기던 할아버지가 한 줌 흙이 된다니. 원하는 대학에 붙어도 그 합격증을 들고 할아버지께 들고 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오호, 붙었어? 고생 많이 했겠네. 타고난 흉통으로 껄껄 웃으며 축복하시는 그 선한 눈을 다시는 볼 수 없다니.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는 생각을 거부했다. 차디찬 창문에 이마를 가만히 기대어 뜨거운 머리를 식혔다. 납골당에 할아버지를 모시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앞에서 울었다. 그때 다짐했다. 이제는 언제 오든 웃는 낯으로 오겠다고. 살아가는 어느 순간이든 앞으로는 웃으며 찾아와 웃으며 가겠다고. 좋은 소식 자주 들려드리겠다고.

삼 일 내내 하늘이 흐렸다. 백로 치르고 좋은 날 이리 가셨다. 이슬이 슬슬 내리고 볕이 따가와도 하늘이 높아 아하 가을이구나 하는 이런 날에. 편히 가셨다. 단지 엄마의 아버지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너무 큰 마음을 가득 짊어지고 계셨다. 열여덟 명을 굳건히 지탱하셨던 그 어마어마한 기둥을 이렇게 보내드린다. 칠십 구 년 평생을 우리의 본이 되셨고 사랑을 가르치셨던, 정말이지 크고 무한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친절과 애정을 보이셨던 당신을 이렇게 보내드린다.

눈물을 거둔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모든 가족의 아버지가 되셨던 당신을 가득 안아드린다. 애정과 경이를 모두 보내드립니다. 다시 뵙는 그날까지. 가슴 미어지도록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Photo by Derek Thomson on Unsplash

Photo by Derek Thomson on Unsplash


<aside> 💬 김승현 선생님 소감 —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하는 글이네요. 좋은 글 고마워요. 집에 어르신들이 모두 연세가 있으셔서 더 그런 생각이 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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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박민 선생님 소감 —

'사랑하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늘 피하고 싶지만 어른인 우리에겐 익숙할지 모를 슬픔을, 첨엔 애써 외면하다 서서히 받아들이며 조금씩 단단해졌을 영은이의 마음이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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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차례(index)

표지

표지와 서지정보

여는 글

서툴기에 더 아름다운 (편집부장 장서영)

우리 모두 꿈을 가져요 (학생회장 손지원)

봉사의 길 (학교운영위원장 송인덕)

조언을 대하는 태도 (학부모회장 김재희)

[특집] 사랑하는 선생님, 자랑스런 선배님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 (신홍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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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나의 시간은 훨씬 길다 (김연지, 33회 졸업)

꿈을 이룬다는 것 (오소정, 35회 졸업)

활발한 고등학생에서 작은 마을 연예인으로 (조혜지,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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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열정・사랑 가득! 재학생 인터뷰

사각사각 인터뷰 (2023 학생회 회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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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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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오직 온라인에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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